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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마르크스의 혁명적 사상

알렉스 캘리니코스

Written on January 27, 2024

사회
4.0

마르크스 이후 세계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스탈린의 등장과 소비에트 연합의 부상과 몰락. 자본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 간 충돌. 자본주의 체계의 변화. 마르크스의 사상은 백 년여의 시간 동안 많은 지지와 비판을 받았지만 그가 우리의 사회를 관통하는 통찰을 남겼다는 점은 유효하다. 심지어 그는 자본주의의 발전에도 큰 기여를 했으며, 그의 분석은 현대에도 유효한 것들이 많다. 따라서 그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원인을 이해하고, 나아가 우리 사회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이것이 내가 마르크스를 더 알고 싶은 이유다.

공산주의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상적 사회주의를 비판하며 마르크스주의를 제창한 데에서 시작되었다. 그들은 기존 사회주의가 수동적인 형태를 띠고 있으며 사회 체제의 변화가 자연스레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결정론적인 사고를 비판하였고, 사회주의는 오직 혁명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며 노동자들의 주체적인 사회 참여를 장려하였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회주의 체제는 마르크스의 사회주의가 아닌 스탈린의 독재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사회주의라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독재, 가난함, 경제적 후진국 등의 이미지와 전혀 무관하다. 가장 큰 차이점은 마르크스는 사회주의로의 변화가 이루어진다면 더 이상 계급 간 착취가 필요 없어지며, 잉여 노동이 사라지고, 나아가 국가가 필요 없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사회주의로의 혁명이 일어나기 위한 필요조건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충분한 성장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오히려 선진국일수록 사회주의로의 전환이 일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노동가치론

마르크스의 사상은 "노동이 인간의 본질"이라는 명제에서 시작한다. 인간은 생산적 노동을 통해 자연과 상호작용하며 자연을 변화시키고 인간 자신도 변화시킨다. 인간은 객관적 세계를 상대로 노동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자신이 유적 존재임을 입증한다. 따라서 그는 사회를 분석할 때 생산이 조직되는 관계, 즉 '사회적 생산관계'에서 초점을 두었다.

마르크스가 '사회적 생산관계'를 분석하는 출발점은 "노동시간이 가치를 결정한다"라는 가정이다. 마르크스는 이 가정을 기반으로 다른 경제적 사회현상을 추상화했다. 인간의 생산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첫 번째는 인간이 자연을 가공하고 변형시켜 필요를 충족하는 물질적 활동(생산력)이며 두 번째는 사람들이 필요한 것을 협력해서 생산하는 사회적 활동(생산관계)이다. 생산력의 성격은 "노동 과정"에 달려 있는데 이는 노동력과 생산 수단으로 분류된다. 다시 생산 수단은 토지와 원료를 지칭하는 "노동 대상"과 도구를 지칭하는 "노동 수단"으로 나눌 수 있다. 마르크스는 경제적 시대가 어떤 노동 수단으로 어떻게 생산했는지에 따라 구별된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는 생산 수단을 누가 통제하는지에 따라 계급이 분리된다고 주장했다. 생산자들이 생산 수단을 통제해야 할 필연성이 없으므로 '직접 생산자'들과 생산 수단이 분리되고, 생산 수단을 소수가 독점할 때 계급이 형성된다. 이러한 독점은 일정 수준의 생산력의 발전이 이루어져야 가능하다. 예를 들어, 생산력이 충분히 발전하지 못한 고대에는 모두가 노동을 해야만 생존할 수 있었다. 이후, 생산력이 발전함에 따라 노예들의 노동만으로도 충분한 양의 생산을 할 수 있었고 그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한 "필요 노동" 뿐만 아니라, "잉여 노동"을 통해 그들의 주인이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양만큼 노동을 지속해야 했다. 따라서 계급은 착취에 의존한다.

착취로 인한 계급은 법률적인 소유관계, 개인의 자유 등과 무관하게, 생산 수단의 소유자와 직접 생산자들의 관계에 의해 형성된다. 자본주의는 단지 이러한 착취 관계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계급 간 착취가 존재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공장을 소유한 자본가들이 기계 및 설비를 소유하고, 노동자들은 생산 수단을 이용해 노동하는 대신 잉여 노동을 통해 잉여 가치를 제공한다. 이는 단순히 제조업 등의 물리적 노동만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이 속해있는 서비스 산업 또한 노동자들이 본인의 필요와 욕구에 관계없이 잉여 노동을 통해 잉여 가치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노동 생산물은 인간의 특정 욕구를 충족해야 한다. 마르크스는 이를 '사용 가치'라고 불렀다. 또, 상품은 시장에서 교환할 때 사용되는 '교환가치'가 존재한다. 사용 가치와 교환가치는 매우 다르다. 예를 들어, 공기는 인간에게 엄청난 사용 가치가 있지만 교환가치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다이아몬드는 사용 가치가 거의 없지만 교환가치는 매우 높다. 그렇다면 이 가치들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마르크스는 모든 상품의 가치가 추상적인 인간 노동량에 의해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이는 노동의 이중성에 대한 설명에 기반한다. 모든 노동은 분명한 목적에 따라 특수한 형태로 노동력을 지출하는 '구체적 유용노동'과, 노동력의 지출을 통해 '추상적 인간 노동'이라는 노동과 동등한 양의 상품의 가치를 형성하는 두 가지 성격이 존재한다.

자본주의에서는 구체적 노동이 사회적 노동과 같지 않다. 노동자들의 구체적 노동과 사회적인 욕구 사이에 필연적 연관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연관은 소비자가 시장에서 상품을 구매할 때 비로소 발생한다. 또한, 자본주의에서는 같은 상품을 생산하는 여러 생산자가 존재하므로 그들은 시장에서 경쟁하고 노동생산성이 높지 않은 경쟁자는 경쟁에서 밀리고 만다. 따라서 그들은 모두 비슷한 생산 방법을 추구하게 되고, 상품의 가치는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 즉 특정 사회의 표준 환경에서 필요한 평균적 노동시간으로 추상화할 수 있다. 그러나 노동력 또한 하나의 상품이다. 노동력의 가치는 노동자가 생존하고 가족을 부양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노동시간이다. 따라서 노동력의 가치는 이미 결정돼 있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를 고용함으로써 노동력의 사용가치인 노동을 얻는다. 자본가들은 본질적으로 노동력의 가치보다 더 큰 노동을 얻음으로써 더 큰 교환 가치를 창출한다. 이 과정에서 자본가는 노동자를 착취한다.

자본주의에서 자본은 가치의 축적이다. 자본의 본질은 더 큰 가치를 창조하고 축적하려는 데에 있다. 자본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되는데 첫 번째로 생산수단에 투자되는 불변자본, 두 번째로 노동력에 투자되는 가변자본이 있다. 자본가들은 본질적으로 잉여가치를 늘리고자 하는데 잉여가치는 가변자본으로부터 만 생산된다. 더불어 노동일을 늘려 절대적인 잉여가치의 양을 늘리는 것에는 한계가 존재하므로, 자본은 끊임없이 노동형태를 개선해 노동력을 증대하고 착취율을 늘리고자 한다. 자본주의의 특징 중 하나는 단일 생산자가 경제를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마르크스는 이를 두고 "자본은 다수 자본으로만 존재할 수 있고, 실제로 존재한다."라고 말했다. 다른 말로 다수 자본의 경쟁이 필연적이다.

자본이 잉여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선 반드시 상품을 판매해야 한다. 따라서 유통 과정 또한 생산의 일부다. 자본이 경쟁의 압력에 놓여 있기 때문에, 각 자본은 생산력을 늘리고 상품에 필요한 노동 시간을 줄임으로써 착취율을 늘리고자 한다. 상품의 시장가치는 자본 간 경쟁에 의해 상품의 가치에 수렴한다. 그러나 잉여가치는 가변자본으로부터 생산되기 때문에 거듭된 경쟁의 결과는 자본에 대한 이윤율을 감소하는 결과를 낳는다. 따라서 자본주의에서 이윤율(가변자본에 대한 잉여가치의 비율)은 감소하는 경향을 가진다. 이는 산업과 산업 사이의 관계에서도 유효한데 자본은 이윤율이 낮은 산업에서 높은 산업으로 이동한다. 결과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산업의 평균적인 이윤율은 감소한다.

바로 이 부분이 노동가치론이 지적하는 자본주의의 핵심적 모순이다. 다수 자본은 본질적으로 경쟁의 압력 속에 놓여있고, 착취율을 올림으로써 경쟁의 우위를 점하려고 한다. 그러나 바로 이 때문에 평균 이윤율은 감소한다. 또한 자본주의에서 상품의 구매가 생산에 반드시 뒤따를 필연적 관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나아가 경제 위기의 발생이 가능하다. 경제 위기는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의 일시적, 폭력적 해결 방법이다. 경제 위기에서 자본은 말 그대로 파괴된다. 생산 수단이 녹슬고 파괴됨으로써 불변 자본의 가치가 초기의 가치가 아닌 이를 재생산하는데 필요한 가치로써 대체된다. 이윤율 저하 경향은 자본주의가 가장 합리적인 사회형태가 아닌, 오히려 역사적으로 가장 제한적이고 모순된 생산양식이라는 것, 즉 생산력을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속박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르크스는 이를 두고 "자본주의의 진정한 한계는 자본 자체다"라고 썼다.

공산주의

자본주의는 노동자들을 집단적 관계로 뭉치게 하는 경향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필요에 의해 생산하지 않는다. 그들은 생산함으로써 다른 노동자들과 사회적 관계를 맺고 서로에게 의존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착취의 압력이 증가하고 이는 노동자들이 더 단결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 예측했다. 가치의 자기 증식은 노동자들의 노동에 달려 있으므로, 이 노동자들이 생산 체계를 마비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이것이 자본주의의 필연적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착취 관계를 전복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단결해야 했다. 혁명이 필요했다. 또 이 혁명은 노동자들이 주체적으로 이끌어나가야 했다. 노동자들의 승리를 일시적 균형이 아닌, 사회 구조의 개혁으로 이끌어나가기 위해서는 이를 계급에 대항한 계급의 투쟁으로 전환해야만 했다.

따라서 공산주의의 초기 단계는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될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 단계가 공산주의로의 전환을 위한 필수적인 단계가 될 것으로 보았다. 이는 노동자 계급이 국가의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국가 형태이다. 이는 이전의 국가 형태와 다르게 다수가 소수를 지배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기존의 국가 형태는 국가가 주민 스스로 무장한 조직과 별개의 공권력의 형성을 수반한다. 다시 말해 국가가 주민을 통제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에서는 이러한 점에서 기존의 민주주의보다 더 고차원의 민주주의이다. 이는 국가를 국민 위에 군림하는 기관에서 사회에 종속된 기관으로 돌려놓는다. 따라서 국가는 점차 붕괴한다. 계급 간 착취가 소멸하며 국가의 필요성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또한 마르크스는 세계화로 인해 각 국가가 점차 대형 자본의 형태를 띤다고 설명했다. 세계시장이 발전하면서 국가와 국가 간 의존관계가 증가하고, 결과적으로 전 세계를 하나의 통합된 경제체제로 만들었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로의 전환은 오직 국제적 규모에서만 승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지 않으면 결핍으로 인해 필수품이 부족해질 것이고, 이전의 폐해가 반복될 것으로 예상했다.

마르크스가 그린 공산주의 사회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북한의 공산주의와 크게 다르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사회의 충분조건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충분한 성장을 들었다. 이는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사회가 본질적으로 착취가 필요하지 않은, 욕구에 따라 생산하고 필요에 따라 배분 받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사회주의 체제의 유지를 위해 노동 계급의 착취에 의존한다. 북한의 지도자들은 노동 계급이 아닌 특권 계층이며 그들은 분명하게 노동계층의 해방에는 관심이 없다. 이는 1900년대 생산력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국가들이 독립 과정에서 스탈린의 러시아를 매력적 모델로 여겼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는 마르크스의 공산주의의 부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