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다르타
싯다르타를 읽게 된 계기부터 고백하자면, 최근에 창업을 시작하면서 스스로와 주변 사람들에 대한 여유를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 고맙게도 J가 이를 솔직하게 짚어주었고, 잠시 휴식과 성찰의 시간을 가질 겸, 갑작스럽게 제주도로 떠났다.
나는 여행을 할 때, 꼭 책 한 권을 사는 습관이 있다. 재작년 미국 여행에서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그다음 제주도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주로 여행의 테마에 맞는 책을 고르지만, 가끔은 책의 배경이 곧 여행지가 되어, 언젠가 어떤 여행지에서 어떤 페이지를 읽었고, 내가 어떤 감정으로 세상을 보았는지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여행을 기억하고, 책을 기억하기 위해 책을 들고 여행을 시작했고, 사진을 찍기 시작한 뒤로는, 책과 사진기만 들고 있노라면, 어느 순간부터 어떤 장소든 자연스레 여행이 되어 있었다. 부끄럽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여행하는 빈도가 줄어왔고, 이제는 사진기마저 중고 거래 플랫폼에 올려둔 상태가, 지금의 나를 가장 잘 대변하고 있었다.
이번 여행에는 최종 후보로 『싯다르타』와 『킬리만자로의 눈』이 남았었는데, 결국 싯다르타를 골랐다. 여행의 테마인 ‘덜어냄’과도 비슷한 주제라고 어렴풋이 알고 있기도 했고, 헤르만 헤세의 글을 오래전부터 아득히 좋아하고 있었으므로, 사실 후보에 『싯다르타』가 오른 순간, 최종 후보가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다만, 짧은 여행이었으므로 이번 여행에서는 책을 거의 읽지 못했고, 돌아온 뒤 며칠 뒤에야 책을 끝맺었다. 특히, J가 데려가 준 취다선에서의 다도에서 큰 영감을 받았는데, 이때 느낀 감정들이 『싯다르타』를 느끼면서 고스란히 글자로 다가왔으므로, 되려 이 점이 책에 몰입하기에 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싯다르타는 평생에 걸쳐 깨달음을 얻기 위해 집을 나와 여러 스승을 찾아가고, 온갖 경험을 실천하지만, 열반에 오르진 못한다. 이윽고 삶의 황혼기에 이르러 비로소 성인이라고 불리게 되지만, 그러나 나의 가슴에 가장 깊이 닿은 말은 싯다르타가 청년기에 처음 집을 나서면서 고타마에게 건낸 말이었다.
지식은 전할 수 있어도, 지혜는 전할 수 없다네.
우리가 ‘배움’이라 부르는 것은, 어쩌면 결국 스스로 터득해 가는 과정에 더 가까운지도 모른다. 만약, ‘배움’이 객관적이며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것이라면, 같은 글을 읽고, 같은 말을 듣는 사람들의 생각이 어떻게 이토록 다를 수 있겠는가.
따라서 배움에 있어서는 각자의 경험이 중요하게 작용하는데, 특히 내가 요즘 들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결국 어떤 사람을 만났는가에 달려 있다고 느낀다. ‘누구’가 꼭 직접 아는 사람인지, 살아있는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에게 있어서도 주변 사람들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역시 버핏인데, 나의 대부분의 철학은 그에게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고, 버핏을 통해 J를 만나게 되었으므로 그 영향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싯다르타에 비유하자면 ‘붓다’라고 볼 수 있다.
다음은 J인데, 같은 꿈을 꾸고 같은 세상을 바라보는 친구가 곁에 있다는 점에서 나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도달하지 못하는 어떤 지점에 서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곤 한다. 워런 버핏과 찰리 멍거의 관계는 우리가 꾸고 있는 꿈에 가장 가까운 것이기도 한데, 둘보다 우리가 이른 나이에 만났으므로 장차 그들만큼 뛰어난 친구가 되고자 하는 꿈또한 지니고 있다.
같이 창업을 하고 있는 K도 빼놓을 수 없다. K와 대화하는 것이 좋은 이유는, 다른 세상을 바라보는 둘이 하나의 꿈을 꿀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를 보고 있으면, 『싯다르타』 속 ‘고타마’가 자연스레 떠오르는데 그 또한 다른 방법으로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며, 싯다르타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삶의 순간에 그를 마주하든 그를 전적으로 믿고 사랑해 주기 때문이다.
결국 『싯다르타』를 읽고 여행을 다녀오며 내가 깨달은 것은, 처음 이 여행을 떠나고자 했던 이유와 정확하게 맞닿아 있었다.
J에게 다시 고마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