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식사를 하며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너에 관한 소설이 있다면, 마지막 문장은 뭐야?"
소설에는 대략 만 개의 문장이 있다. 그 중에서 실제로 이야기를 움직이는 문장은 기껏해야 오백 개에서 천 개 정도. 독자가 기억하는 문장은 열 개 남짓. 그리고 모든 것을 끝맺는 문장은 단 하나뿐이다.
작가는 자신의 모든 상상력을 쏟아내고, 이야기의 마지막 여운까지 다 소진한 후에야 비로소 그 하나의 문장을 내뱉는다. 나머지 만 개에 가까운 모든 문장들은 오직 그 마지막 한 문장을 위해서만 존재한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들은 그 마지막 문장을 완성하기 위한 준비 작업일지도 모른다. 사랑했던 사람들, 잃어버리고 잊어버린 것들, 포기한 꿈들과 끝까지 붙잡은 희망까지도. 모든 삶이 그 하나의 문장으로 수렴해간다.
이상하게도 우리는 모두 자신의 삶이 어떻게 끝날지 알고 있다. 특히 '개선문'의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우리보다 한층 더 생생하게 그것을 체감했을 것이다. 하지만 잊혀지는 만 개의 문장들마저도 아름다울 수 있는 법이다. 레마르크의 책이 그렇듯이.
절개를 위해 메스를 갖다 대고 부드럽게 누르자마자 가늘고 붉은 핏자국이 생겨날 때의 숨 막히는 긴장감을 어찌 그에게 설명할 수 있으랴. 클립과 집게 밑에서 몸뚱이가 여러 겹의 커튼처럼 열리면서 지금까지 한 번도 빛을 보지 못했던 기관들이 드러나고, 정글 속 사냥꾼처럼 자취를 더듬어 가다가 파괴된 조직, 종기나 종양, 또는 벌어진 틈 속에서 별안간 거대한 맹수인 죽음과 맞닥뜨리게 되는 순간의 긴장감을, 그리고 가느다란 메스와 바늘 한 개, 확신에 찬 손놀림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 그 전투를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그는 다시 잔을 가득 채웠다. "어렸을 때 나는 풀밭에서 밤을 지낸 일이 있었죠. 여름이었고, 하늘은 아주 맑았어요. 잠들기 전에 보니 오리온자리가 지평선 숲 위에 걸려 있었지요. 그러다가 한밤중에 깨어 보니 오리온자리가 갑자기 바로 내 머리 위에 와 있었어요. 그때 일을 잊어버릴 수가 없어요. 지구는 별이고, 자전한다는 것을 배워서 알고 있긴 했지만, 그저 책에 있는 것을 배울 때처럼 배웠을 뿐이고, 거기에 대해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던 거지요.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정말 그렇구나 하고 느꼈던 겁니다. 지구가 소리도 없이 무한한 공간을 날고 있다는 것을 느꼈던 거지요. 느낌이 너무 강렬해 내동댕이쳐지지 않으려면 무엇이든 붙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깊은 잠에서 깨어나 잠시 기억과 습관에서 벗어나, 엄청나게 이동해 버린 하늘을 바라보게 된 때문이었겠지요. 지구는 갑자기 더 이상 고정된 곳이 아니었어요. 이후로 지구는 내게 다시는 완전한 것이 아니었지요."
"잊어요. 후회란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짓이에요. 아무것도 되돌릴 수 없고, 아무것도 만회할 수 없어요.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우리 모두는 성인일 거예요. 삶은 우리를 완벽한 존재로 만들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소, 완전한 인간이 있다면 그런 건 박물관에나 맞을 거요."
"사람들은 진실을 가지고 자신을 속일 수도 있어요. 그쪽이 더 위험한 꿈일지도 모르지."
"당신은 자신에 대해선 말하기 싫어하나 봐요. 그렇죠?" "나에 대해선 생각하기도 싫소." 그녀는 잠시 말문을 닫았다가 말했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들어요. 이전 생활은 이제 다 지나갔다. 아무 걱정도 없이 기대하는 마음으로 지냈던 것은 이제 옛 이야기다." 라비크는 미소를 지었다. "지나가 버리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케이트. 인생이란 우리가 숨 쉬기를 그치기 전에 그냥 끝내 버리기엔 너무도 위대하니까."
"행복이라고." 라비크가 말했다. "도대체 그건 어디서 시작하고, 어디서 끝나는 거지?"
그의 발이 국화꽃을 건드렸다. 행복이라니 하고 그는 생각했다. 청춘의 푸르른 지평선. 행복은, 황금빛 찬란한 삶의 균형 아니던가! 맙소사, 행복은 지금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건 당신에게서 시작하고 당신에게서 끝나는 거예요." 조앙이 말했다. "아주 간단해요."
책을 펼칠 때마다 '칼바도스'가 등장한다. 칼바도스는 이 책에서 거의 하나의 등장인물처럼 느껴진다.
"그럼 다른 건 이제 맛이 없어지는 거죠."
"정반대야, 다른 술도 실제보다는 더 맛나지는 거지, 다른 칼바도스를 그리워하는 칼바도스가 된단 말이야. 그렇게 되면 칼바도스는 진부하지 않게 되는 거고." 조앙이 큰소리로 웃었다. "말도 안 돼요. 당신도 알면서."
"물론 어리석은 소리지, 하지만 우린 그 어리석음으로 살아가는 거야. 사실이라는 메마른 빵으로 살아가는 건 아니거든. 그렇지 않다면 사랑이란 게 어떻게 있을 수 있겠어?"
"그게 사랑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요?"
"밀접한 관계가 있어. 사랑이 지속되도록 하지.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단 한 번만 사랑할 거고, 그다음엔 모든 걸 거부할 것 아니겠어. 자기를 버렸거나, 자기가 버린 인간에 대한 일말의 동경이 그다음에 나타나는 인간의 머리를 둘러싸는 후광이 되는 거야. 이전에 누군가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이, 새로운 사람에게 그 어떤 낭만적인 빛을 더하는 거지. 이건 말하자면 오래되고 경건한 환영이야."
그동안 너무 잘 살았어 하고 그는 생각했다. 너무 많이 가지고 있었던 거야. 없어지면 괴롭기만 한 것을.
라비크는 몸을 일으켰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피투성이 기차가 피를 뚝뚝 흘리며 여름날 저녁에 피 묻은 선로 위를 미친 듯 달려간다. 다시 독일로 돌아가, 살인을 정당화한 잔학한 제도의 형리들에 둘러싸여 고문당하고 쫓긴다. 이런 꿈을 벌써 백번이나 꾸지 않았던가. 너무도 자주! 그는 남에게서 빌려온 빛으로 온 세상의 빛을 모조리 빨아들이는 달빛을 노려보았다. 강제수용소의 공포로 가득한 꿈, 학살당한 친구들의 굳은 얼굴로 가득한 꿈, 살아남은 사람들의 눈물 없는 화석처럼 마비된 고통으로 가득한 꿈, 모든 비탄을 넘어선 참담한 이별과 고독으로 가득한 꿈이었다.
낮 동안에는 자신의 눈보다도 높은 담을, 장벽을 쌓아 올릴 수 있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천천히 힘겹게 쌓아 올렸던 것이다. 소망들은 냉소로 목을 죄어 죽여 없앴고, 추억은 냉정하게 파묻어 짓밟아 버렸으며, 모든 것을, 심지어 이름까지 잡아채 없애 버렸고, 감정은 시멘트로 덮어 버렸던 것이다. 그런데도 이따금 무심결에 과거의 창백한 얼굴이 달콤하게 망령과 같이 나타나 자신을 부를 때면, 실성할 때까지 술을 마셔 잊곤 했다. 낮 동안에는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밤이 되면 다시 꿈에 내맡겨졌다. 고된 단련으로 얻은 브레이크는 풀려 버렸고, 수레는 미끄러져 구르기 시작했다. 의식의 지평선 너머에서 과거는 다시 고개를 쳐들고, 무덤을 파헤치고 나타나는 것이다. 얼어붙었던 발작은 다시 시작되고, 망령들은 돌아오고, 피는 다시 끓어올랐다. 상처들은 피를 뚝뚝 흘렸고, 암흑의 폭풍은 모든 방벽과 바리케이드를 휩쓸어 버린다!
사방에 불빛이라곤 없었다. 광장엔 어둠만 짙게 깔려 있 었다. 너무 어두워, 개선문조차 보이지 않았다.
소설 속에 잠깐 등장했던 자노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세 페이지 정도의 글을 여기 옮겨본다.
"내 다리를 잘랐어요?" 하고 자노가 물었다. 그의 마른 얼굴은 핏기가 없어 낡은 집 벽처럼 희였다. 주근깨들이 시커멓게 돋아 있어서, 원래부터 얼굴에 있던 게 아니라 페인트로 칠을 한 것처럼 보였다. 절단된 다리는 철사로 엮은 바구니에 들어 있었고, 그 위를 담요가 덮고 있었다.
"아프니?" 라비크가 물었다.
"네. 다리가, 다리가 몹시 아파요. 간호사한테 물어봤지만, 무뚝뚝하게 말해 주지도 않았어요."
"다리를 잘랐단다." 라비크가 말했다.
"무릎 위요, 아니면 아래요?"
"10센티미터 위야. 무릎은 으스러져서 살릴 수 없었어."
"잘됐네요." 자노가 말했다. "그러면 보험회사에서 10퍼센트 정도 더 받을 수 있어요. 아주 잘됐어요. 무릎 위든 아래든 의족인 건 마찬가지니까요. 하지만 매달 15퍼센트씩 더 받는다는 건 다행이에요." 소년은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어머니한테는 당분간 말씀드리지 말아 주세요. 뭉툭하게 잘린 자리에다 이렇게 앵무새 새장을 씌워 놓았으니 안 보시는 게 나아요."
"어머니한테는 아무 말도 안 할 거야, 자노."
"보험회사는 평생 동안 연금을 지불해야 하죠, 안 그래요?"
"그럴 거야."
치즈 색 얼굴이 찡그린 상이 되었다. "그자들은 놀랄 거야. 내가 겨우 열세 살이라, 오랫동안 지불해야 하니까. 어떤 보험회사인지 아세요?"
"아직 몰라. 하지만 자동차 번호는 안단다. 네가 기억을 해 두었잖아. 경찰이 벌써 다녀갔어. 너한테 묻고 싶어 했어. 하지만 넌 오늘 아침까지 자고 있었어. 경찰은 오늘 저녁에 다시 올 거야."
자노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증인이 문제예요." 이윽고 소년이 말했다. "증인이 중요해요. 증인이 있을까요?"
"네 어머니에게 두 사람 주소가 있는 것 같았어. 손에 쪽지를 들고 있던데."
소년은 조바심을 했다. "어머니는 그걸 잃어버릴 거예요. 안 잃어버렸어야 할 텐데. 노인네들은 다 그래요. 어머니는 지금 어디 계시죠?"
"네 어머니는 밤을 새고 오늘 점심때까지 침대 곁에 계셨어. 돌아가 계시라고 우리가 말씀드렸지. 아마 곧 오실 게다."
"아직 잃어버리시지 않았어야 할 텐데. 경찰은......" 그는 깡마른 손으로 갸냘픈 몸짓을 해 보였다. "사기꾼이에요." 하고 소년이 중얼거렸다. "모두 사기꾼이라고요. 보험회사랑 짝짜꿍이에요. 그래도 확실한 증인만 있다면...... 어머니는 몇 시에 돌아오실까요?"
"곧 오시겠지. 어쨌든 그런 것 때문에 흥분하면 안 돼. 모든 게 순조로울 거야."
자노는 입안에서 무언가를 씹기라도 하듯이 입을 움직거렸다. "보험회사는 일시불로 지불할 때도 있어요. 타협을 해서 연금 대신으로요. 그러면 우리는 그걸로 장사를 시작할 수 있어요. 어머니와 내가."
"당분간은 푹 쉬도록 해." 하고 라비크가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도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어."
소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말이야." 하고 라비크가 되풀이했다. "경찰이 왔을 때 기운을 내야 하잖아."
"그래요. 맞아요. 그럼 어떻게 하면 될까요?"
"자야지."
"하지만 그러면."
"널 깨워 줄 거야."
"붉은빛, 틀림없이 붉은빛이었어요."
"틀림없어. 그럼, 이제 자도록 해. 필요하면 이 단추를 누르고."
"선생님......"
라비크는 몸을 돌렸다.
"모든 게 잘되면......" 자노는 베개를 베고 누웠다. 미소와 깊은 그 어떤 것이 소년의 조숙하고 일그러진 얼굴 위로 스쳐지나갔다. "가끔 운수가 좋을 때도 있어요. 그렇죠?"
여자는 잠시 숨을 쉬지 않았다. 두 눈은 완전히 그늘져 있었다. 여자가 눈을 떴다. 동공이 아주 컸다. 라비크는 여자가 자기를 보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티 아모(당신을 사랑해요.)" 하고 여자가 말했다.
여자는 어린 시절의 말을 썼다. 다른 말을 하기에는 너무 지쳐 있었다. 라비크는 여자의 생기 없는 두 손을 잡았다. 그의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찢겼다. "당신은 나를 살아 있게 해 주었어, 조앙." 그는 멍한 눈의 얼굴에 대고 말했다. "당신은 나를 살아 있게 해 주었어. 나는 그냥 돌멩이에 지나지 않았어. 그런데 당신이 나를 살아 있게 해 주었어......"
"미 아미? (당신도 나를 사랑해요?)" 잠들고 싶어 하는 아이의 질문이었다. 그것은 모든 피로 뒤에 찾아온 최후의 피로였다.
"조앙." 하고 라비크가 말했다. "사랑은 말로 표현할 수 없어. 충분치 않아. 강물 속 아주 작은 부분, 물 한 방울, 나뭇잎 하나밖에 되지 않아. 사랑은 훨씬 더 큰 거야......"
"소노 스타타 셈프레 콘테......(영원히 당신 곁에......)"
라비크는 여자의 두 손을 쥐었다. 여자의 손은 그의 손을 느끼지 못했다. "당신은 언제나 나와 함께 있었어." 하고 그가 말했고, 자기가 갑자기 독일어로 말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당신은 언제나 나와 함께 있었어. 내가 당신을 사랑했을 때나 미워했을 때나, 무관심하게 보였을 때나 늘 그랬어. 변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 당신은 늘 나와 함께 있었고 내 마음속에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