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of 파운데이션

파운데이션

소설5

아이작 아시모프

2025. 9. 1.

We're psycho. And I'm history.

서론

'링글'이라는 화상영어 서비스에서 언젠가 독서 이야기를 했다. Nick은 굉장한 SF 소설 팬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는데, 나 또한 SF 소설을 좋아한다고 자부하지만 그가 읽어봤냐고 묻는 소설 대부분을 알지 못해 부끄러울 참이었다. 그가 내게 이런저런 책을 추천하면서 SF 팬이라면 꼭 읽어봐야 한다는 책으로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시리즈를 추천해주었다. 나는 이 책을 기억하고 있다가 우연히 도서관에서 1권을 발견했고, 그날로 심리역사학에 빠져들게 되었다.

아이작 아시모프라는 이름은 모를 수 있어도, 그의 족적은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다. 유명한 영화인 '아이 로봇'의 원작자이기도 한 그는 '로봇 3원칙'으로 유명하다.

  1. 로봇은 인류에게 해를 입혀선 안된다.
  2.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되며,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에게 해가 가도록 해서도 안 된다.
  3. 제1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4. 제1원칙과 제2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자기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

일론 머스크 또한 파운데이션 시리즈가 스페이스X의 설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으니, 아시모프는 사실상 현대 SF의 초석을 놓은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흥미롭게도 그의 책은 방대한 과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했음에도 내용 전개에 과학 기술의 세부사항이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역학에 초점을 맞추었기에 시대를 초월한 보편성을 획득했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이 아닐까 싶다.

심리역사학

파운데이션의 시작과 끝을 관통하는 주제는 해리 셀던과 그의 심리역사학이다. 심리역사학은 간단히 말해 수학적으로 인류의 미래를 예측하는 학문이다. 해리 셀던이 평생에 걸쳐 심리역사학을 완성했으며, 그의 예견에 따라 파운데이션이 창시되고 여러 사건이 진행되기 시작한다. 해리 셀던은 책의 시작에서 1000년 뒤 파운데이션이 제2 은하제국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그 사이의 굵직한 사건들을 모두 예측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이 심리역사학에 매료되어 경제학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할 정도로, 심리역사학은 구체적으로 묘사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독자를 사로잡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파운데이션 속 과학 기술

1940~50년대에 쓰여진 작품임을 고려하면, 아시모프의 상상력은 경이롭다. 파운데이션에는 초공간 도약(하이퍼스페이스 점프), 개인용 에너지 방어막, 원자력 소형화 기술, 홀로그램 통신 등 다양한 미래 기술이 등장한다.

놀라운 것은 이 중 일부가 현실이 되었다는 점이다. 그가 상상한 '백과사전 갤럭티카'는 오늘날의 위키피디아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며, 휴대용 통신 장치와 홀로그램 기술은 이미 우리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특히 빅데이터와 AI를 활용한 예측 모델링은 심리역사학의 현실적 구현이라 볼 수 있다. 구글이나 아마존이 사용자 행동을 예측하고, 사회학자들이 복잡계 이론으로 사회 현상을 분석하는 모습은 셀던이 꿈꾸던 미래와 크게 다르지 않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아시모프가 기술 자체보다 '기술이 인간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했다는 점이다. 원자력이 종교화되는 과정, 기술 격차가 만드는 권력 구조, 지식의 독점과 분산이 가져오는 사회 변화 등은 오늘날 AI와 빅테크 기업들이 일으키는 변화를 예견한 듯하다.

파운데이션을 읽고

공학자이자 개발자로서 파운데이션을 읽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매일 코드를 작성하고 시스템을 설계하면서도, 때로는 눈앞의 문제 해결에만 매몰되어 더 큰 그림을 놓치곤 한다. 하지만 아시모프가 그려낸 은하제국의 모습을 보며, 내가 만드는 작은 코드 한 줄이 언젠가는 인류가 별과 별 사이를 여행하는 미래의 초석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전율을 느꼈다.

흥미롭게도 나만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일론 머스크가 스페이스X를 창업한 계기가 파운데이션이었다는 건 유명한 일화고, 실제로 실리콘밸리의 수많은 개발자와 창업가들이 이 책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구글의 창업자들도, 많은 AI 연구자들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우리 같은 기술자들에게 파운데이션은 일종의 '공통 교과서'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해리 셀던이 천 년 후를 내다보며 파운데이션을 세웠듯이, 나도 내가 짜는 코드가 조금이나마 의미 있는 미래를 만들어가길 바란다. 거창한 은하제국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다음 세대가 조금 더 나은 기술적 토대 위에서 시작할 수 있도록 말이다.

"폭력은 무능한 자의 최후 수단이다"라는 샐버 하딘의 명언처럼, 진정한 힘은 지식과 기술, 그리고 상상력에서 나온다. 아시모프가 70년 전에 상상한 미래의 일부는 이미 현실이 되었고, 나머지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중이다. 개발자로서 그 여정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설렌다. 언젠가 진짜로 초공간 도약이 가능해지는 날이 온다면, 그때 다시 이 책을 꺼내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