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of 누구에게나 신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누구에게나 신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인문

에릭 와이너

2025. 5. 10.

어릴 적에는 교회에 다녔다. 부모님은 종교가 없으셨지만, 교회에는 친한 친구들이 함께였다. 심심한 일요일 아침, 아빠와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를 보고 있으면 열시 반쯤 교회에 가자는 전화가 왔다. 친구와 교회에 가면 또래 친구들이 많았고 예배를 드리는 것도 재미있었다. 예배를 꽤 열심히 듣었던 편이여서, 아직도 그리스도교에 대해 기본적인 대화는 나눌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은 가지고 있다. 중학교에 입학한 뒤로는 자연스럽게 교회와 멀어졌다. 그만큼 신앙심이 깊지 않았던 탓도 있으나, 이사를 하면서 친했던 친구들과 멀어진 것이, 교회를 떠나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교회 집사님께 연락이 종종 오긴 했지만, 별다른 교류없이 시간이 흘렀다. 비록 이제는 교회에 다시 돌아갈 생각이 없지만, 그때의 경험은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특히, 종교와 믿음을 편견 없이 받아들이는 태도를 익힌 점이, 내게는 무엇보다 소중하게 남았다.

교회를 다니면서 아직까지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사건이 있다. 교회 어른들과 차를 타고 이동하는 중이었다. 조수석에 계신 분께서 "xxx 집사님이 지난 번 돌아가셨다고 하더라고요. (중략) 원래는 불자셨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예수님을 믿게 돼서 다행이죠."라고 말씀하시자 다른 분들께선 "그러게요. 천국 가셨을 거에요." 등의 반응을 보였다. 당시 어린 나는, 필요에 의해 종교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특히, 이전에 믿던 종교가 있음에도 새로운 종교를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이러한 일을 별다른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는 생각이 꽤나 인상깊었다. 몇 년 후,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께서도 천주교로 개종하셨다. 독실하게 예배를 다니심에도 불구하고 집안 곳곳에는 부적을 붙여두셨다. 그리스도교의 교리대로면 죄를 짓고 있음이 분명했지만, 마음이 복잡했다. 그리스도교 교리만 따르자면 잘못된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각자의 믿음과 그 형태를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늘날 주변에서 믿음을 가진 사람을 찾아보긴 쉽지 않다. 통계적으로도 젊은 사람들이 종교를 가지지 않는 추세라는 것은 잘 드러나 있다. 그러나 이 현상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서는 재고해볼 여지가 있다. 니체는 "금욕주의적 이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논문에서 "인간이 아무것도 의욕하지 않기보다 차라리 무를 의욕하기를 원할정도"라고 말했다. 인간이 존속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딘가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아왔음은 부정할 수 없다. 실제로 주변에서 신실한 종교 생활을 하는 친구들을 떠올리면, 그들이 종교를 대하는 태도처럼 삶을 대하는 태도도 진정성있고 주체적으로 살아간다고 느낀다.

때문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돌이켜보면, 나 또한 마찬가지로 필요에 의해 종교와 신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교회를 다니던 시기가 지나고 나서도 때때로 기도를 드린 적이 있다. 시험을 잘 보게 해달라고, 실수하지 않게 해달라고, 면접에서 통과하게 해달라고. 특히, 위기가 찾아와 마음이 무거울 때 종교는 큰 힘이 되어주는 것 같다. 작년 초에는 개인적인 일로 방황하던 시기가 있었다. 이 때 우연히 부활절 미사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서초동 성당 근처에서 중고 거래를 하던 날이었는데, 조금 남아서 성당 안으로 들어가 텅 빈 예배실을 구경했다. 뒤편의 2층 테라스 위에는 오르간이 위치해 있었고, 붉은 벽,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상의 엄숙함과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마음이 편안해져 잠시 쉬고 있는데, 하나 둘 사람이 들어오더니 곧이어 수백명이 예배실로 들어왔다. 알고 보니 그날이 천주교에서 가장 큰 행사 중 하나인 부활절 미사가 열리는 날이었다. 얼떨결에 미사에 치루는 모든 의식과 예배에 참석한 나는 뜻밖의 위로와 편안함을 얻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효과가 있는 것이 진리다 - 에릭 와이너

친구와 이야기하다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결국 각자의 가치 체계의 가장 최상단에 있는 것이 신이다.” 에릭 와이너가 책에서 찾아 헤매는 신도, 어쩌면 이러한 맥락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종교의 교리에 무조건 순종하기보다, 스스로에게 의미 있고 도움이 되는 부분을 선택하며 자신만의 신념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신을 찾는 과정이라기보다, 자신의 삶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그 신과 관계 맺을지 고민하고 확신을 얻으려는 여정처럼 보였다.

특히 흥미로웠던 점은, 그가 접한 여러 종교에서 명상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나 역시 이 책을 계기로 명상을 시작했다. 아침과 자기 전, 각 10분씩 명상을 하며 머릿속을 정돈하는 시간이 가져오는 힘을 몸소 체감하고 있다. 잠에서 깨어날 때부터 다시 잠에 들 때까지 생각이 생각을 물고 늘어지는 삶에서, 이제는 정돈된 마음으로 하루 대부분을 보내고 있다. 데이비드 앨런이 말한 것처럼,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려면 우선 머리를 비워야 한다”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게 되었다. 에릭 와이너의 말처럼 '효과가 있는 것이 진리'라면, 내게는 명상이 진리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