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이 쓰인 1931년, 야간 비행은 무모하고 위험한 일이었다. 리비에르는 국제 항공우편 회사의 지부장 격으로, 야간 비행의 도입을 주도하는 인물이다. 그의 아래에는 여러 조종사와 정비사, 그리고 직원들이 있다. 리비에르는 야간 비행을 성공적으로 궤도에 올리기 위해 그들로 하여금 주저하지 않고 행동하게 만든다.
그는 겉으로는 엄격하고, 무자비하며,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어 보인다. 실수 한 번에 몇십 년간 항공기의 정비를 책임진 관리자를 해임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도 끊임없이 내면의 갈등과 동정, 그리고 죄책감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일정한 태도를 유지하는 이유는 그가 대의를 가장 값진 것으로 여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이들을 지배하지만, 동시에 자신을 지배하고 살아가게 하는 알 수 없는 그 무언가를 따르며 스스로를 희생시킨다.
'내가 한 일이 옳은지는 모르겠다. 나는 인생의 정확한 가치도, 정의나 우울의 가치도 모른다. 나는 한 인간의 기쁨이 어떤 가치를 지는지 정확히 모른다. 떨리는 손의 가치도 모른다. 동정도, 따뜻함도….'> 그는 생각에 잠겼다. '삶에는 얼마나 모순이 많은가. 하지만 우리는 삶과 화해할 수 있는 만큼 화해하면서 산다…. 그러나 계속 살아가고,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소멸할 수밖에 없는 육신과 맞바꾸는 것은….'(중략)
어느 날 정비사와 리비에르는 건설 중인 다리 근처를 지나가다가 부상당한 인부를 보게 되었다. 이때 정비사가 리비에르에게 물었다. "이 다리가 저 망가진 얼굴보다 더 가치가 있을까요?" 그 다리를 이용하게 될 농부 중 어느 누구라도 다음 다리로 돌아가는 수고를 덜기 위해 그토록 끔찍하게 얼굴을 훼손시켜도 된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다리를 세운다. 정비사는 이렇게 덧붙였다. "공익은 개인의 이익이 모여 이루어집니다. 그 외의 것들은 아무것도 정당화되지 못해요." 한참 뒤에 리비에르가 대답했다. "하지만 인간의 목숨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고 해도, 우리는 항상 무언가가 인간의 목숨보다 더 값진 것처럼 행동하죠.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우리가 누리는 많은 것들은 누군가의 젊음, 사랑, 자유를 대가로 치러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대개 이러한 희생을 망각한 채, 오직 편안함에 익숙해져 살아간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우리에게 '대의가 그만큼 값진 것인가?'라고 물음을 던질 자격이 있을까? 그리고 리비에르와 그 모든 대의를 위한 삶을 비난할 자격이 있을까?
내가 바꿀 수 있는 미래가 삼백 년 후의 미래라면, 삼백 년 전의 사람으로서 할 일을 하고 싶다. -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지금도 우리는, 우리보다 오래 남겨질 것들을 위해 살아간다. 의미 없어 보이는 개별의 사건이 하나의 큰 흐름으로 비춰질 때까지는 또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남겨질 것들을, 혹은 남겨져야 할 것들을 인지하고,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해 나가야만 하는 사람을, 필연적으로 소수의 삶을 사는 사람을 동정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