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이 쌓이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지난 몇 년간 수많은 일을 해왔지만, 막상 그 때의 자료를 찾아보거나 가물가물한 정보를 다시 찾아보려고 하면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시간 나면 정리해둬야지'라고 하면 영원히 정리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나서야 메모나 지식 관리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다. 몇 개월의 시행 착오를 거치고, 사내의 시니어님이 추천해주신 책을 읽고 나서야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티아고 포르테의 '세컨드 브레인'은 생산성에 관한 책 중 내게 압도적으로 가장 큰 도움이 된 책이다. 이는 지식 저장 시스템인 '세컨드 브레인'의 구축 필요성과 방법론을 제시하는 책이다.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일의 성격에 따라 최적의 지식 정리 방법은 다르다. 나 또한 티아고 포르테가 제시한 방법을 그대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세컨드 브레인'을 구현하는 방식보다는 핵심 원리를 중심으로 소개하겠다.
우리의 두뇌는 한계가 있다. 우리의 인지능력에도 한계가 있지만, 우리의 기억에도 한계는 존재한다. 심지어 오늘날에는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진행하기도 한다. 우리는 가정을 돌보는 동시에 직업적인 일도 수행하고 있으며 개별의 일은 더 이상 단순하지 않다.
일의 양도 늘어났지만 일에 필요한 능력도 달라지고 있다. 이제는 일을 진행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생산해내야 한다. 단순히 정해진 업무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창의력을 발휘하기에 녹록지 않다.
우리는 정말 많은 양의 정보를 소비해야 하며, 이를 가공함으로써 우리에게 필요한 배경 지식을 생산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이 아이디어를 검증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을 우리의 뇌가 혼자 감당하기에는 부담이 너무 크다.
그래서 우리는 두뇌가 창의력을 발휘하기 위해 가장 좋은 환경을 구성해 주어야만 한다. 그렇게 하려면 우리 두뇌는 반복적이고 소모적인 일에 드는 자원을 최소화해야만 한다. 세컨드 브레인은 바로 이 맥락에서 등장한다. 제2의 두뇌를 외부에 만들어둠으로써 우리 뇌의 과부하를 최소화하고, 창의력을 발휘하기 위한 최적의 환경을 구축한다.
여기서는 세컨드 브레인의 인상 깊은 철학 몇 가지를 소개한다.
메모가 살아남을지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발견 용이성(discoverability)이다. 우리는 새로운 메모를 만들 때 자연스럽게 백과사전식 분류를 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유용한 엑셀 함수를 발견했다고 하자. 사용법을 익힌 뒤, 우리는 '엑셀'이라는 폴더에 이 메모를 저장한다.
하지만, 세컨드 브레인은 이렇게 제안한다. "내가 이 메모를 찾는 시점에 유용하도록 정리하라." 만약 이 함수가 특정 시점(회계 마감)에 사용해야 할 함수라면 '회계 마감 시기'라는 폴더에 메모를 저장하라. 그리고 관련한 메모를 모두 여기에 두라. 정보를 찾는 맥락에 맞춰 정리하는 것이 핵심이다.
중간 패킷 단위로 일하는 것은 피드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피드백은 지식 노동자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창의성은 '무'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창의성이란 늘 기존에 있는 여러 사람들의 생각을 혼합함으로써 나온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모아 통합하는 것이 기발한 생각을 혼자 끊임없이 짜내는 것보다 훨씬 쉽다.
따라서, 일을 피드백을 자주, 유의미하게 받을 수 있는 형태로 계획해야 한다. 이 계획의 단위가 '중간 패킷'인 것이다. 예를 들어 보고서 작성 시 개요 작성 -> 자료 수집 -> 초안 작성 -> 검토 및 수정으로 나누어 각 단계마다 피드백을 받는 것이다.
이렇게 했을 경우 추가적인 장점이 존재한다.
또한, 중간 패킷 단위로 일을 할 경우, 프로젝트 자료나 지식을 재사용하기 쉽다.
이미 80% 진행한 프로젝트만 시작하라
바로바로 메모하고 세컨드 브레인에 정리가 되었다면, 어떤 일을 시작하고자 했을 때 이미 필요한 모든 정보가 담겨 있을 것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늘 다음에 어떤 내용을 쓸지 알고 있어야만 작업을 끝냈다. 마지막까지 아이디어를 짜내느라 얼마 남지 않은 에너지마저 소진하지 않고, 다음 줄거리가 명확해지면 글쓰기를 멈추곤 했다. 이는 지속가능한 창의적 작업의 핵심이다.
이 원리는 지식 관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무언가를 습관화하는 비결은 힘들이지 않고 즐겁게 하는 것이다. 완벽하게 끝내려 하지 말고, 다음에 할 일이 명확한 상태에서 멈추는 것이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만드는 방법이다.
'세컨드 브레인'은 내게 명확한 삶의 방식의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특히 일의 효율을 엄청나게 증가시켜주었다. 많은 지식을 습득하고 이용해야 하는 직업의 특성상, '세컨드 브레인'은 지식과 경험의 재사용성을 현저하게 높여주었다. 또, 다른 사람들과 협업하는 과정에서도 도움을 주기 쉬웠다.
따라서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특히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거나 창의적인 업무를 하는 사람들에게 유용할 것이다. 다만, 책의 방법론을 적용하는 일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 역시 내가 사고하고 일하는 방식에 티아고 포르테의 방법이 완전히 들어맞지는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원리를 이해하고 자신에게 맞는 형태로 맞춤화하는 과정이며, 이를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과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