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텔리엔은 순수한 지성으로만 움직이는 세계이다. 여러 전쟁을 겪은 뒤, 세계의 국가들은 인류의 퇴보를 막기 위해 속세와 철저히 분리된 사회를 만들었고, 그것이 카스텔리엔이 되었다. 이들은 평생 의식주에 대해 전혀 신경 쓸 필요 없이, 각자의 관심사에 따라 지적 탐구에만 몰두한다. 카스텔리엔은 혈육에 의해 세습되는 사회도 아니다. 이들에게는 결혼과 이성 교제 또한 철저히 금지되어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그들에게 '창작' 활동이 금기시되어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들의 사회에서 시를 쓰거나, 문학을 쓰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새로운 음악이 탄생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들에게는 유리알 유희가 있다.
유리알 유희는 언어로는 그 본질을 온전히 표현할 수 없다. 우리는 유리알 유희와 유희자들에 관한 묘사만으로 유희를 상상해 내야만 한다. 유리알 유희는 지적 탐구의 가장 고귀한 결과물로써 받아들여진다. 카스텔리엔인들은 인류가 여태껏 탐구해 온 모든 지적 탐구의 결과물을 (수학, 언어, 음악 등) 유리알 유희라는 형태로 융합해 냈다. 따라서 이 유희는 그들이 만들어낸 지적 탐구물의 결과이자 과정이며, 동시에 미래이기도 하다. 또한, 유일하게 카스텔리엔이 창조해 낸 개념이기도 하다.
주인공인 요제프 크네히트는 소설 중후반부에 유리알 유희 명인이 된다. 유리알 유희 명인은 카스텔리엔의 최고 권력자 2인 중 한 명이다. 대부분의 카스텔리엔인들이 속세와 철저히 분리된 삶을 사는 것에 반해, 그의 삶은 속세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위치에 있다. 발트첼 시절에는 데시뇨리와 논쟁을 펼치면서, 수도원에 파견된 시절에는 야코부스 신부와 교류하면서, 그의 가치관은 제법 다르게 형성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열렬한 정치가였던 데시뇨리에게는 속세와 카스텔리엔 사이에 있는 정치적인 관점의 차이를, 존경받는 역사학자였던 야코부스 신부에게는 카스텔리엔과 관련된 역사적 관점을 배웠다. 이것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카스텔리엔인들은 정치와 역사에 대해 고민하거나 토론하는 것을 하찮게 여긴다는 점 때문이다.
요제프 크네히트는 결국 카스텔리엔이 속세와 절대적으로 분리되어 존속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크네히트는 순수한 지적 탐구와 현실적 참여가 분리될 수 없음을, 진정한 지혜는 이 둘의 통합에서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이례적으로 카스텔리엔의 최고 명예인 유리알 유희 명인 자리를 내려놓고 속세로 떠난다.
사람들은 점점 극단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정치, 종교, 이념의 집단 극단화(group polarization)는 사회과학의 큰 이슈 중 하나이다. 극단화의 대표적인 결과 중 하나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다. 확증 편향이란 우리가 이미 확신한 정보에 대해 편향된 정보만을 수용하는 경향을 의미한다. 확증 편향이 우리 사회에 거대한 영향을 미치는 이유 중 하나는 사실은 견해에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질병이 발생해서 약 600명의 사망자가 예상되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당신이 백신 프로그램의 최종 결정자라면 다음 중 어떤 프로그램을 선택할 것인가?
다음 중에선 어떤 프로그램을 선택할 것인가?
물론, 위의 네 가지 프로그램은 모두 동일한 기댓값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연구에서 A와 B 중에서는 A, C와 D 중에서는 D의 선택이 높게 나타났다. 이는 메시지 프레이밍 현상인데, 같은 사실이라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인식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확증 편향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과 동일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만 소통하려 하며, 이에 따라 에코 챔버 효과에 빠진다123. 이는 소셜 미디어의 확산으로 더 빠르고 강하게 나타난다. 연구4에서는 사람들끼리 토론을 거칠수록 의견이 더 극단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결과적으로, 확증 편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사람에게 반대 의견의 근거를 제시하며 중재하려고 하면 부정적인 영향만 드러나게 된다.
전문가들은 미디어 리터러시가 사회 전반적으로 유의미하게 향상되기 어렵다고 비판하지만,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교육이 효과를 증명하고 있다. 한 논문5에서는 반대 관점 고려하기(Consider-the-Opposite)라는 전략으로 피드백을 제공하면 객관적 증거 평가 능력이 효과적으로 높아진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핀란드와 스웨덴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수십 년 전부터 의무화하여 긍정적인 결과를 얻고 있다6.
그러나 집단 극단화와 확증 편향을 넘어선, 보다 근본적이고 폭넓은 변화가 필요하다. 특히 대학의 존재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시점이다. 역사적으로 대학은 지식인들이 서로 교류하고 철학과 사상을 함께 고민하며, 사회를 이끌어 갈 통찰력을 키우는 장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대학이 취업과 기술 습득에 치우친 학원으로 전락해 버린 것도 사실이다.
대학은 단순히 전문 지식을 전달하는 곳이 아니라, 사회와 학문을 연결하는 ‘교량’ 역할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변화가 필요하다:
극단화와 소통의 부재는 과학 기술과 같이 전문가와 비전문가 간 정보의 격차가 크게 차이 나는 분야에서 심화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통제 범위를 벗어날수록, 불확실할수록, 자의성에 의해 발생한 위험이 아닐수록 위험을 회피하려는 경향을 가진다. 따라서 과학 기술과 관련된 주제일수록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기가 어렵다.
나의 의문은 "오늘날의 사회에서 과학계가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려는 필요를 느끼고 있는가?"이다. 정보 격차가 극히 심화하면서 과학 윤리의 진보는 기술에 한참 뒤처지고 있다. AI 모델을 학습하는 데에 사용된 저작물과 정보들의 경계에 대해선 아직도 뚜렷한 사회적 합의가 없으며 심지어는 어떤 정보가 사용될 수 있는가에 대한 뚜렷한 권리 의식이나 기준 또한 미비하다. 암호 화폐에 대한 열광은, 암호 화폐가 돈세탁 등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간과하게 만들었다.
더 이상 과학 연구는 천재 한두 명의 활약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초거대기업 단위의 자금이 투입되고, 국가 단위의 투자가 이루어지고, 범국가적인 협업이 필수적일 정도로 과학 기술은 복잡하고 거대해졌다. 다시 말해, 과학 연구를 명확히 이해하고 악용을 막는 행위 또한 매우 어려워졌다. 자칫하면 기술의 진보가 곧 무기로 악용될 수도 있다. 과학 기술에서도 서로 패권을 다투려는 세계의 정세로 비추어보아 머지않은 미래의 모습 같기도 하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마치 카스텔리엔인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과 소통하고 자신의 연구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어야 한다. 악용될 수 있는 결과를 예상하고 사회적 소통과 합의를 통해 윤리의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 또한, 대학은 단순한 지식의 배움뿐만 아니라, 이러한 사고방식을 장려해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크네히트가 제시한 새로운 형태의 카스텔리엔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핵심은 학문에 기초한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지적 성취에만 국한하지 않고, 사회·정치적 문제를 폭넓고 유연하게 바라보는 태도에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지식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하고, 확장해 나가느냐에 대한 태도이다. 다시 말해, 현실적인 이해관계에만 몰두하거나, 이론 연구에만 매몰되는 태도는 온전한 지성인과 거리가 멀다. 다양한 정보에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그에 맞춰 자기 생각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해 가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카스텔리엔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아가, 이러한 지성인은 다양한 변화와 문제에 대처하는 데에 있어 주변 환경이나 여론에 휩쓸리지 않으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과 관점을 받아들일 수 있다. 결국, 이 ‘새로운 카스텔리엔’의 지향점은 사회를 다양하고 건강한 방향으로 이끄는 동시에, 개인 스스로도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게 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 없는 사실이라고 본다. 따라서, 우리는 사회적인 관점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더 나은 삶 추구라는 관점에서도 '새로운 카스텔리엔인'을 추구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Smith, L. G. E., Blackwood, L. & Thomas, E. F. The need to refocus on the group as the site of radicalization. Perspect. Psychol. Sci. 15, 327–352 (2020). This paper presents a reconceptualization of radicalization as polarization within groups who recognize a shared grievance and agree on how to act in response, challenging policy and traditional individual-level explanations. ↩
Thomas, E. F., Cary, N., Smith, L. G. E., Spears, R. & McGarty, C. The role of social media in shaping solidarity and compassion fade: How the death of a child turned apathy into action but distress took it away. New Media Soc. 20, 3778–3798 (2018). ↩
Smith, L. G. E., McGarty, C. & Thomas, E. F. After Aylan Kurdi: how tweeting about death, threat, and harm predict increased expressions of solidarity with refugees over time. Psychol. Sci. 29, 623–634 (2018). ↩
Smith, L.G.E., Thomas, E.F., Bliuc, AM. et al. Polarization is the psychological foundation of collective engagement. Commun Psychol 2, 41 (2024). https://doi.org/10.1038/s44271-024-00089-2 ↩
Suzan van Brussel, Miranda Timmermans, Peter Verkoeijen, Fred Paas, ‘Consider the Opposite’ – Effects of elaborative feedback and correct answer feedback on reducing confirmation bias – A pre-registered study, Contemporary Educational Psychology ↩
Lord, K. M., & Vogt, K. (2021). Strengthen Media Literacy to Win the Fight Against Misinformation. Stanford Social Innovation Review. https://doi.org/10.48558/PY1B-3G51 ↩